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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 전주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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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에게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 연휴를 쉴 수 있던 5월 첫째주.

당시에는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았기에 하루 휴가 내는 건 아무 상관 없었지만 여자친구에겐 상당한 부담이었던 거 같다.

결국 5일 어린이 날 하루만 전주에 다녀오기로 하고 부랴부랴 기차표를 알아봤지만,

역시 하루 전날 게다가 연휴에 기차표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다행히도 오전 버스표가 남는 게 있어서 7시 50분 버스를 타고 전주에 가게 되었다.

전주를 가본 건 10번이 다 되어가지만 한옥마을을 온전히 구경했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한옥마을만 잘 보고 오리라 다짐했지만...


#1. 전주로 가는 길

7시 50분에 서울 센트럴 터미널에서 전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물론 늦게 표를 산 덕분에 우등이 아닌 일반.

연휴이긴 하지만 버스 전용차선을 이용하면 금방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평소 2시간 반이면 가던 전주를 5시간 걸려서야 도착했다.

아침 7시 50분에 출발했던 우리는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전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등도 아닌 일반을 탄 덕분에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다.


#2. 경기전 나들이 with 한복 코스프레

전주 남문 근처에서 내려서 바로 눈에 띄던 건 다름아닌 한복 입은 사람들.

어린이 날이어서인지 한옥마을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였는데 그 와중에 그들이 눈에 띄었다.

알고 봤더니 한복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있었던 것.

여기 온 김에 한복을 입고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1시간 반 대여해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경기전 나들이를 했다.


은근히 한복이 잘 어울렸던 거 같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

단, 한복 대여 시간이 너무 짧아 입고 여기저기 돌아볼 수 없었던 건 아쉬웠다.


<경기전>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1410년(태종 11)에 임금은 전주, 경주, 평양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하는 전각을 짓고 어용전(殿)이라 하였다. 경기전은 왕조의 발상지라 여기는 전주에 세운 전각으로, 세종 때 붙인 이름이다.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4년(광해군6)에 중건하였다. 보호면적은 49,590㎡이다.

경기전의 경역은 정전(殿)과 조경묘()로 나뉜다. 

정전(보물 1578)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931)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지대석()과 면석() 및 갑석()을 갖춘 기단 위에 세운 다포계() 형식의 맞배집으로, 그 전면 가운데에는 1칸 규모의 기단을 돌출시켜 쌓고 그 위에 첨각()을 세워 배례청을 시설했다.

마치 능침()의 정자각()과 같은 형상이다. 이 첨각 기단의 3면에 벽돌을 깐 보도를 연결하였다.

조경묘는 정전 북쪽에 있다. 태조의 22대조이며 전주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 이한() 부부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771년(영조 47)에 지은 것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경기전 조경묘 도형의 그림을 보면 지금은 없어진 전사청() ·동재 ·서재 ·수복방 ·제기고 등 부속건물들과 별전이 따로 있는 광범위한 성역이었다. 전주시가 관리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주 경기전 [全州 慶基殿] (두산백과)


#3. 한옥마을 한 바퀴

한옥마을을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은 너무도 많이 달라진 거 같다.

예전에는 한옥 위주로 구경을 했다면 지금은 먹거리들과 즐길 수 있는 게 많아졌다고 해야할까.

한옥마을 내에 숙박업체도 많고 해서 굳이 다른 곳으로 가서 숙박을 할 필요도 없어진 거 같다.


한옥마을 전경

전동성당


한옥마을의 대표적인 명소라고 한다면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아닐까.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성당은 바로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던 풍남문()이 있던 곳에 있다.

1891년(고종 28)에 보드네(Baudenet)신부가 성당의 대지를 매입하고, 그 뒤 1908년 프와넬(Poisnel)신부의 설계로 착공하여 1914년에 준공을 보았다.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 건물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한 점이 많으나 건축양식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회색과 적색의 이형() 벽돌을 사용하여 섬세한 모양을 꾸며낸 점은 같으나 반면에 아치의 모양이나 종탑의 양식은 전혀 다르다.

두툼한 외부 벽체와 반원아치의 깊숙한 창이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고딕양식의 명동성당이 내부 열주 사이를 뾰족한 아치로 연결한 아케이드인 데 반하여, 이 성당은 8각 석주 사이가 반원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그 규모가 크고 외관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이 성당은 건평 189평에 대지 4,000평이며,

전주 중앙본당이 1956년에 준공되기 전까지는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이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주전동성당 [全州殿洞聖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가맥집

저녁때가 다 되어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맥주 한잔 하고 올라가려 이 곳에 유명한 가맥집에 들렀다.

맥주 즐기기에는 딱이지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전주에서의 반 나절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 즐겁게 보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맘 편히 즐기기는 쉽지가 않더라.


전주 남문